[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만난 루이 암스트롱과 에드가 드가의 흔적들

미시시피강과 늪으로 둘러싸인 척박한 도시, 뉴올리언스는 인디언조차도 별 관심이 없던 지역이었다. 이런 황무지 같은 늪지대를 항구 도시로 만든 사람은 유럽 대항해 시대 때 대서양을 건너온 프랑스인이었다. 1718년 프랑스는 북아메리카와의 교역을 위해 미시시피강 하구에 식민 도시를 건설하였고, 도시의 이름은 오를레앙 공작(Duke of Orleans)의 이름을 따서 ‘뉴올리언스(New Orleans)’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 프랑스와 스페인이 100년 가까이 뉴올리언스를 번갈아 통치하였고, 1803년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나폴레옹으로부터 이 도시를 사들였다.

우선 백인과 흑인의 문화가 혼재된 미국이지만, 뉴올리언스를 제대로 알기 위해 문화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크리올(Criole)’이라는 단어를 이해해야만 한다. 원래 이 뜻은 미국에서 생겨난 ‘유럽 백인의 언어와 문화’를 일컫는 말이었지만, 남북전쟁 이후 크리올은 유럽인과 아프리카 흑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을 가리키는 말로 왜곡되었다. 대개 크리올의 아버지는 프랑스, 스페인, 독일, 아일랜드 등 유럽 출신의 백인이었고, 어머니는 아프리카계 흑인이었다.

뉴올리언스

백인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 출신의 크리올들은 어릴 적부터 백인들의 문화와 교육을 받았다. 심지어 유럽에서 음악과 미술 그리고 과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배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크리올은 아무리 유럽인의 교육과 문화를 배웠다고 해도 유럽인들처럼 대우받지 못했고, 그렇다고 흑인들로부터 존경이나 혈연적 공감대도 얻지 못했다. 크리올의 정체성은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표류하는 유색인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음식, 언어, 예술 등 문화의 다양성을 키우는 데 일조한 것이 바로 크리올이었다. 그중에서 유럽의 전통 클래식 음악을 공부한 크리올들은 뉴올리언스로 돌아와 아프리카 흑인들만의 독특한 리듬과 멜로디 그리고 자유분방한 정서를 담은 새로운 음악, 재즈를 탄생시켰다. 우리는 흔히 재즈가 뉴올리언스에서 노동하던 흑인만의 음악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유럽의 백인 음악과 아프리카의 흑인 음악이 크리올처럼 혼재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본격적으로 재즈와 크리올 문화로 가득한 뉴올리언스에서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곳은 구시가지 중심지인 프렌치 쿼터이다. 여행의 시작점이자 종착지인 프렌치 쿼터는 재즈와 크리올 음식 그리고 유럽풍의 분위기가 아주 인상적인 중심거리이다. 버번 스트리트, 로열 스트리트, 잭슨 광장, 세인트루이스 대성당, 프렌치 마켓, 루이 암스트롱 공원, 보존 홀 등 뉴올리언스를 대표하는 여행지가 바로 프렌치 쿼터에 몰려 있다. 원래 프렌치 쿼터는 18세기 초 프랑스인이 정착했던 곳으로 발코니가 있는 유럽풍의 주택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그러나 1788년과 1794년 두 번의 화재로 프랑스풍의 건축물들은 모두 불에 탔고, 그 자리에 스페인 양식의 2~3층 건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골목길마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파스텔 톤의 집들이 프렌치 쿼터를 미국에서 만나는 유럽을 연상케 한다.

미시시피강을 따라 들어선 프렌치 쿼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거리는 단연 버번 스트리트이다. 프랑스 ‘부르봉 왕가(House of Bourbon)’의 이름을 딴 ‘버번(Bourbon)’ 스트리트는 낮부터 늦은 밤까지 재즈의 흥겨움이 하루도 쉬지 않고 흐른다. 미국과 전 세계에서 재즈를 좋아하는 여행자들이 일 년 내내 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비좁은 골목길에 울려 퍼지는 재즈밴드의 음악 선율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럼 뉴올리언스에서 언제부터 재즈가 시작되었을까?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난 후 군인들이 사용하던 트럼펫, 호른, 트롬본, 북 등을 이용해서 재즈밴드가 버번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생겨났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트럼펫 연주자이자 보컬인 루이 암스트롱은 재즈를 대중화시킨 대표적인 인물이다. ‘책가방만큼 입이 크다’라는 뜻의 ‘새철 마우스(Satchel mouth)’ 또는 줄여서 ‘사치모(Satchmo)’로도 불린 루이 암스트롱은 1901년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고, 1922년 시카고로 떠나기 전까지 이 도시에서 코넷과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했다. 그는 시카고와 뉴욕에서 전성기를 보냈지만, 항상 “나의 고향은 뉴올리언스”라고 대답할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불우한 10대 시절을 보낸 루이 암스트롱은 우연히 옆집에 사는 유대인으로부터 코넷을 선물 받은 후 코넷 연주자로 재즈에 입문하였다. 열아홉 살이 되던 1918년 9월, 루이 암스트롱은 미시시피강을 오가던 유람선에서 브라스 밴드 연주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의 멋진 연주 솜씨는 금세 뉴올리언스에 소문이 났고, 그로부터 4년 뒤인 1922년 그의 멘토인 킹 올리버를 따라 시카고로 떠나 크리올 재즈밴드에서 명성을 떨쳤다. 1963년에는 한국을 방문해 재즈의 정수를 보여줬고, 이날 이후 우리는 재즈 하면 루이 암스트롱을 떠올리게 되었다. 허스키 목소리로 부르는 스캣(Scat)과 멋진 트럼펫 연주 그리고 익살맞은 표정 등은 그의 가장 큰 매력이다.

잠시 재즈 음악을 뒤로하고 프렌치 쿼터에서 차로 10여 분만 달려가면 프랑스 출신의 인상주의 화가로 유명한 에드가 드가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 1872년 어느 가을날 서른여덟의 드가는 뉴올리언스에서 5개월간 머물며 22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는 오스만 파리 시장이 재개발한 파리와 달리 목조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뉴올리언스의 생경한 풍경에 매혹되었다. 그 당시의 느낌을 절친한 친구인 화가 제임스 티소에게 보낸 편지로 알 수 있다. “오렌지 나무와 목련 나무들로 둘러싸인 하얀 집, 백인 어린아이를 팔에 안고 있는 흑인 여성, 모슬린 옷을 입은 숙녀들과 두 개의 커다란 굴뚝이 있는 증기선, 골목길을 따라 즐비하게 들어선 상점, 아름다운 혼혈의 크리올들과 사랑스러운 프랑스 출신의 여인들.”

드가 작품 <면화 사무소>

이처럼 드가는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뉴올리언스에서 머물며 미국 속에서 만나는 또 다른 유럽풍의 이미지들을 화폭에 담아냈다. 이 중에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1873)라는 작품은 외삼촌이 운영하는 목화 공장 사무실을 배경으로 그린 것이다. 이 그림 맨 앞에서 면화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이가 바로 외삼촌이고, 그 뒤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내 1876년 두 번째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았다.
드가는 어떤 계기로 프랑스 파리에서 멀고 먼 뉴올리언스까지 갔을까? 사실 드가의 어머니는 프랑스 이민자 출신으로 그의 외가 친척들이 뉴올리언스에서 목화와 은광 사업으로 부자가 됐고, 친동생 아킬레와 르네도 목화 공장에서 외가의 일을 도왔다. 현재 드가가 머물렀던 외삼촌 집은 작은 호텔이자 드가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집 앞에는 드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발레리나의 조각상이 그를 좋아하는 팬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뉴올리언스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도시이다. 미시시피강의 증기선, 버번 스트리트의 재즈 연주, 크리올의 음식,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 에드가 드가의 흔적 등등.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지는 곳이 바로 뉴올리언스이다.